| 김정태(베뢰아대학원대학교 신약학 교수) 그리스도인은 성경적 방법으로 돈을 벌고 사업을 경영해야
십계명이 요즘에 나왔다면 ‘교회를 장사하는 곳으로 만들지 말라’는 것이 있을 것 같다. 예수님이 요즘에 활동하신다면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사 교인을 끌어들이는 ‘다단계의 피라미드’ 사업자들을 다 내어쫓을 것 같다. 성전 안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 파는 자들에게 하신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는 말씀을 “서로 사랑하라”는 새계명의 시행세칙으로 내렸을 것 같다. 다단계 판매에 연루되는 것을 경계하는 까닭은 거액을 벌게 한다는 허황된 꿈을 꾸게 하여 삶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신앙’과 ‘사람’과 ‘돈’이라는 것을 모두 잃게 만들기 때문이다. 잃는 것은 자신에게 피해를 입히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상대방에게도 회복하기 힘든 엄청난 피해를 가하고 있어, 신자들은 조심해야 한다. 왜 다단계가 그러한 피해를 주는가? 사람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을 공급하여 소모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활용치 못할 물건 구입으로 그치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어느 일간지에 크게 보도되었듯이, 중국동포 장씨 부부는 “돈만 넣으면 한 달에 3백 만원 이상을 받는다”는 말에 넘어가, 1천 만원을 다단계사업에 투자했다. 그러나 그들은 회원을 피라미드식으로 계속 끌어들여야 약속한 고수익이 보장된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불법체류 신분이라 아는 사람도 별로 없는 그들은 투자한 돈 대신 받은 옥매트·정수기·건강식품·화장품 세트만 떠 앉게 되었다. 결국 장씨 부부는 셋방에서 쫓겨나, 공장과 작업장으로 따로 헤어져 머물 수밖에 없었으니, 그들에게 옥매트가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먼지 구덩이’에서 힘들게 일하고 있는 그들에게 정수기와 건강식품과 화장품은 헛된 사치품에 지나지 않으며, 그들의 힘든 노동에 찬물을 끼얹는 것일 뿐이다. 그렇게 따로 살다가 혹시 가정이 파탄이 난다면 어쩔 것인가? 다단계가 신앙생활에도 피해를 끼치는 이유는, 교인을 바로 그 회원에 가입시켜 불필요한 물건을 값비싸게, 그것도 환불도 쉽지 않게 하고, 그 교인을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어렵게 하기 때문이다. 어느 다단계 업체는 반품을 판매 회사로 못하게 하고, 제작 회사로 떠넘기기도 한다. 좋은 제품이고 좋은 회사라면 판매한 곳에서 반품도 수용해야 마땅하다. 요즘 많이 들어서는 대형유통업체 중 어느 곳을 가보더라도 그런 것은 상거래의 기본으로 통하고 있다. 따라서 그렇게 반품이 되지 않는 거래는 결국 자신을 회원으로 가입시킨 사람과의 의를 상하게 하여, 한 교회에서 마주치는 것을 어렵게 하여, 결국 한 사람은 교회를 떠나게 된다. 다단계 판매로 인한 금전거래가 파혼까지도 불러 일으키는데, 신앙에도 그런 피해를 입히지 않겠는가? 어떤 사람은 다단계가 생계를 위한 직업인데, 왜 교회에서 말리느냐고 반발한다. 물론 교회가 그들의 생활을 책임져 주지 않는 상태에서 그런 직업을 만류하는 것은 당연히 그런 반발을 가져온다. 그러나 생계를 위한 것이라고 해서 모두가 선하다고 할 수 없다는 점을 우선 인식해야 한다. 성경은 오히려 생계를 포기하는 것이 선이라고 말하는 경우도 있다. 신앙인은 직업을 택할 때에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야고보서에서 경고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에 따르지 않는 것은 악하다는 것이다. “들으라 너희 중에 말하기를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아무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 년을 유하며 장사하여 이(利)를 보리라 하는 자들아 … 너희가 도리어 말하기를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 저것을 하리라 할 것이거늘 이제 너희가 허탄한 자랑을 자랑하니 이러한 자랑은 다 악한 것이라”(4:13∼16) 내가 아는 어떤 사람도 다단계 판매 활동을 하였는데, 내가 ‘그’와 관련되어 몇 가지 일을 겪으면서 알게 된 것은 그 일에 한번 빠지면 그 일에 몰입한다는 것이다. ‘그’는 기존의 안정된 생계를 포기하고 그 일에만 전념했다. 더 좋은 일이라면 그만 두는 것이 나쁠 이유야 없으며, 또 자기 직업에 전념하는 것이 비난의 대상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그 일은 다른 것을 전혀 하지 못하게 하는 것 같았다. 연락할 일이 있어 ‘그’에게 전화를 걸면 무슨 교육을 받고 있었는데, 하루 이틀 받는 것이 아니었다. 물론 통화도 거의 되지 않았다. 그렇게 몰입하게 하는 것에 대한 피해자의 진술(www.antipyramid.org)을 보면, 그것은 일종의 세뇌교육이다. ‘성공했다는 사람들’의 발표는 참석한 사람에게 일확천금(一攫千金)의 허황된 꿈을 심어주어, 그 꿈에서 깨어나지 못하게 하는 것이었다. ‘그’가 또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판매활동을 자랑하는 것도 그런 유(類)의 것이었다. 심지어 ‘그’는 한 달에 일억 원을 번다는 말을 하며 다른 사람에게 가입을 유도하기도 했다고 한다. 좋은 대기업의 임원도 성실하게 이삼 십 년 동안 일을 해야 그 경력을 인정받아 연봉이 그 정도라는데, 그 일을 시작한지 일 년도 안 되어 그것의 열 배를 어떻게 버는지, 내게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그렇게 일명 ‘고수익’을 올리는 방법은 물건을 파는 것보다 자기 밑에 또 다른 사람을 계속 끌어들이는 것이다. 어떤 면에서 그것은 다음 사람에 의해 버는 방식이지, 자신이 직접 노력하거나, 상품이 잘 활용이 되어 돈을 버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불건전한 다단계 판매회사인지 확인하는 첫 번째 방법은 “회사로 데려가서는 싫다고 해도 교육을 들어 달라고 사정 아닌 사정을 하는 경우”이다. 또한 그 교육도 “제품에 대해서는 별 말이 없고, 주로 돈을 번다는 사업성만 강조하는 경우”이다. 그래서 “무조건 전업으로 사업을 해야 한다”고 강요할 뿐만 아니라, 졸졸 따라 다니며 감시가 아닌 감시를 하기도 한다. 어쨌든 우리 신자들은 성경적인 방법으로 돈을 벌고 사업을 경영해야 한다. 기독교에서 강조하는 상행위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업을 해야 한다는 것이고, 둘째는 불로소득(不勞所得)이나 과도한 이윤추구를 탐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성경에서 왜 게으름을 비난하는가? 그것은 땀흘리지 않고 양식을 취하는 것은 도둑질과 같기 때문이다. 왜 고리대금업자를 저주하는가? 그것은 적정한 이득을 취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땀과 수고를 착취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왜 창기(娼妓)의 헌금을 받지 않는가? 그것은 상대의 가정을 파괴한 대가로 하나님께 가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김정태(베뢰아대학원대학교 신약학 교수) jameskim27@orgi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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